종교인의 연애

  978-89-92467-97-1  04080
2015-04-30|140×203|무선|244쪽|13,500원
인문, 종교, 에세이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시리즈 2권. 종교인의 내밀한 연애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종교 철학과 행보를 들여다본다. 비교종교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오강남, 진보신학의 명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 아시아계 여성 최초의 종신교수 현경, 중세 신비주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성해영, 이충범, 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 시인 김형수, 여성주의 희곡의 개척자 유진월 교수가 들려주는 종교인들의 연애 사건을 한 권에 담았다.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예수회 사제와 소설가의 만남, 승려와 승려의 사랑, 이슬람 수니파 성자의 동성애, 남편과는 금욕한 채 신과의 에로티시즘을 실현한 중세 신비가 등 이채롭고 울림이 있는 종교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종교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한다.

“당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어라.” (이슬람 성자 루미)

 

사랑이 아니라 연애, 그것도 종교인의 연애?

- 종교인은 정말 금욕주의자인가

그렇다. ‘사랑’이 아니라 ‘연애’다. 굳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 대신 연애라는 통속적인 말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사랑이라는 말이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면 연애라는 말은 구체적 행위성을 좀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단순히 감정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으로 인생에 큰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종교인의 연애’라고 하면 왠지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도 꽤 된다. 종교인은 금욕주의자와 동의어로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 성해영 교수의 말처럼 “종교인은 이성(異性)보다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나 종교적 진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들은 세속적 사랑, 특히 성적인 사랑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성해영, 6장 <성속 합일의 에로스>, 211쪽). 그러나 뜻밖에도 세상을 발칵 뒤집으며 후대인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종교인의 연애 사건은 꽤 많다. 이 책은 바로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 각 종교계에서 큰 획을 그은 성직자 6인의 연애 이야기, 그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종교 철학과 사상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애욕에 시달리고, 질투하고, 집착하는 성직자들

- 일엽&백성욱 /  카를 라너&루이제 린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사옵기에 살아서 이 몸도, 

죽어서 이 혼까지도 그만 바치고 싶어질까요.”

연애편지에 수없이 인용되었을 법한 위 문장은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 보낸 서신의 한 구절이다. 이 편지를 받았을 남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만약 그가 그녀를 사랑했다면 가슴 벅찬 나머지 환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은 한 가지 큰 문제를 담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승려가 또 다른 승려에게 보낸 편지였다는 점이다. 공개되어서는 상당히 곤란했다는 얘기다. 이성을 향한 금욕은 가톨릭 사제와 더불어 승려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조건이니 말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그 승려는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펴내며 이 서두에 이 시를 수록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토록 대범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바로 1920년대 신여성의 대표 주자로 여성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가 돌연 불가로 귀의한 일엽 스님이다. 남성이 주도한 공적 담론 형성 과정에서 여성이 스스로 길을 열고 능동적 주체로 참여하는 최초의 본격 여성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자유연애와 신정조론을 주장하던 김원주(일엽의 본명)는 갑자기 여성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승려가 된다.

그러나 일엽은 한때 혼까지 바쳐 사랑하고 싶었던 백성욱에게 소포 하나를 받고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심지어 “성불의 길이 조금 더디어도 좋아요”라고 고백하고 만다. 성불을 위해 보내온 10여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고백이었다. 5장 <사랑과 이별은 곧 하나이며 나와 당신 또한 하나라>의 저자 유진월 교수는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고자 들어선 길에서 그 목표가 늦어져도 좋다니, 이보다 절실한 사랑의 고백이 또 있을까?”라고 말하는데, 보통 사람은 승려가 애욕에 빠져 허덕이다니 이보다 더한 자격 미달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내 일엽은 청춘을 불사르지 못하면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청춘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그간의 연연해하던 편지를 모두 찢어버린다. 그 뒤 일엽은 불교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며 한국 불교사의 가장 대표적인 비구니로 큰 발자취를 남긴다. 인간으로서 자신이 겪어왔던 애욕의 감정을 정공법으로 세상에 알림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고 참 자유인이 된 것이다.

불교계에 일엽이 있다면 기독교계에는 카를 라너가 있다. 그 역시 일엽이 그랬듯이 사제 신분임에도 “한 여성과의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사랑 때문에 받은 깊은 고통을 겁내지 않았”(122쪽)던 신학자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너는 ‘오직 스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고, ‘교회가 유일한 구원의 방주’라는 당대의 신학에 “그리스도를 모르지만 자기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의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함으로써 세계 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3장 <익명의 사랑>을 쓴 이충범 교수는 라너의 이 발언은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가 누렸던 절대 종교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사건”이었다고 표현한다. 뿐인가. 라너는 여성의 피임과 여성의 사제 서품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침묵과 수행에 전념했던 모범적 수사이자 혁명적인 신학 이론으로 전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사제였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신학을 공부한 사람 모두가 20세기 최고 신학자라고 칭할 만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러나 라너는 사후 또 다른 사건으로 일반인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예수회 사제였던 그가 한 여성과 깊이 관계돼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삼각관계에까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상대는, 바로 전혜린이 번역해서 한국인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았던 《삶의 한가운데서》의 저자 루이제 린저다.

라너는 린저에게 생전 2213통의 편지를 린저에게 보냈고, 린저는 라너에게 366통을 보냈다. 하루에 서너 통도 마다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편지를 썼으며, 죽기 전 자신이 받았던 편지를 린저에게 보냈다. 예수회가 이 증거를 없앨 터이므로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린저는 라너의 편지를 출간하려 했으나 그 편지마저 예수회 소유라는 원칙에 따라 좌절되고, 자신이 라너에게 보낸 편지만 출간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줄타기’라는 뜻의 《그라트반더룽》이다. 줄타기란 경계의 문제를 뜻하며, 경계란 바로 라너의 독신 서약을 의미한다. 제목에서부터 라너가 정말 린저와의 관계에서 독신 서약을 충실히 지켰는지, 그 경계선을 결코 넘어서지 않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충범 교수는 바로 이 책의 원서를 읽고 분석해 3장 <익명의 사랑>을 집필했다. 그것도 소설과 일반 산문 형식을 교차해 씀으로써 흥미로움과 깊이를 모두 담보해내고 있다.

명망 높은 사제의 마음을 사로 잡은 린저는 대체 어떤 여성이었을까. 라너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세 번의 이혼, 《파문》《삶의 한가운데》 집필, 반나치 활동, 반핵 평화 운동, 여성운동 참여자, 1984년 대선 후보자.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이라고 수식해도 과하지 않았다. 시대에 맞서 싸워왔던 주체적인 여성 린저와 진보적 신학으로 최고 명성을 자랑했던 라너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이 첫 만남의 장면을 이충범 교수는 소설로 묘사했는데, 그들은 한마디로 서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지는 대화의 장을 펼쳤다. 이 둘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나갔고 사랑으로 이어졌지만 문제는 린저가 또 다른 사제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너는 큰 질투심에 휩싸여 린저를 나무라고, 린저의 집 근처를 배회하고, 편지를 보내고 또 보내는 등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이충범 교수는 그가 “위대한 신학자, 사제, 수도사였던 라너는 린저와의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서 병적 심리 상태를 보여주었다. 라너는 엄청난 질투로 스스로 큰 고통 속에 빠졌던 듯하다”라고 말한다. 린저는 라너의 집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당신은 나에게 친구일 뿐입니라”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자 헤어지자는 라너의 제안을 무너뜨린 사람은 정작 린저였다. 린저 역시 자신의 삼각관계에서 라너를 절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둘의 관계는 라너가 죽기 전까지, 아니 죽은 후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성과 속,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로지르다

- 루미&샘즈  / - 마저리&그리스도

 

“당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어라.”

누가 한 말일까? 이슬람 성자 루미의 말이다. 그는 이슬람 신학자이자 신비주의 권위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페르시아의 ‘엄친아’였다.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에 아버지가 연구했던 사상의 계승자가 되고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몇 년 후에는 학장이 된다. 결혼도 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던 그가 어느 날 문제의 남자를 만난다. 샘즈다. 춤추는 수피 신비주의자, 제멋대로 행동하는 히피 같은 사람, 아버지뻘 되는 이 샘즈와 만났을 때 루미는 신음 소리를 내며 기절했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둘의 만남은 강렬했다. 엄친아의 탈을 벗어던지고 동성애라는 문제적 사랑에 빠진 것이다. 루미와 샘즈는 3개월 동안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가 되는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방에 틀어박혀 아무 데도 나가지 않은 채 깊은 침묵 속에서 오로지 서로의 눈만 응시하며 몇 시간씩 같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현경, 2장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60쪽).

샘즈와의 만남은 명망 높은 신학자, 학장, 법률가였던 루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다. 샘즈는 그간 루미가 읽었던 책을 모두 우물 속에 던져버리고 그 내용을 온몸으로 살아내도록 한다. 웬 남자와 서로 눈만 바라보며 엑스터시에 빠지는 루미를 주변 사람들은 의혹의 눈으로 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샘즈는 루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켜버린다. 샘즈를 만난 그는 이제 모든 일상을 통해 신을 표현하려고 한다. 신이 일상과 저 멀리 떨어진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 생각에 반대하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를 멀리한다. ‘여신 3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현경 교수는 이 둘이 갑작스레 만나서 엑스터시를 경험하고 루미가 완전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불꽃 속에서 타 죽지 않고 그것이 내 영혼을 정제하는 용광로가 되도록 견뎌낼 수 있는 힘. 거짓 자아를 다 태워버리고 알몸으로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는 힘, 그 과정에서 신을 만나고 신의 현존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는 힘. 바로 존재를 부수는 목숨 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53쪽).

만약 루미가 샘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샘즈가 떠난 뒤 수없이 쏟아낸 많은 시를 우리가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사사로움 속에서 신을 신의 존재를 느끼고, 남자와 남자가 만나 강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들에게 성과 속, 남과 여를 구분하고, 거기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려는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이들이 이루어낸 종교적 성취에서는 무의미해진다.

한 존재와 만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종교인으로는 6장 <성속 합일의 에로스>에 소개된 중세 기독교 신비가 마저리 켐프를 빼놓을 수 없다. 다만 무려 열넷에 달하는 자녀를 출산하고 그녀는 남녀간의 사랑을 멀리고 이성과 나누는 육체관계를 어느 때보다 금기시했던 중세 기독교 배경을 생각해볼 때, 종교인으로서의 자격 요건이 없는 듯 보인다. 더욱이 문맹이었던 그녀가 타인의 손일 빌어 남긴 자서전 《마저리 켐프 서》를 보면 남편과 나누었던 육체관계에서 느꼈던 희열, 자신을 유혹했던 한 남성에 대한 성적 욕망이 아주 솔직하게 적혀 있다.

6장의 저자 성해영 교수는 《마저리 켐프 서》가 중세 절대 약자였던 여성, 학식이 전혀 없는 문맹 여성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임을 강조하고, 그녀가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종교적 행보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를 여러 차례 강조한다. 가령 당시 지배적인 영성은 남성 중심이자 지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적 신학이었는데, 켐프를 포함한 여성 신비가는 시각, 청각,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녀만 해도 기이한 종교 체험, 종교적 열정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음과 고함 등으로 표현했으며, 신과의 사랑을 남녀 간의 결혼에 비유하는 ‘신부 신부주의’라는 독특한 영성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그녀는 자신이 유부녀인 탓에 처녀성을 잃은 것을 슬퍼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흠결이 없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발상은 여성의 육체적 순결을 강요하는 당시 기독교 교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녀가 신을 저 멀리 떨어진 추상적 원리나 초월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 즉 신을 마치 남편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하고 보살펴주는 친근한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켐프는 반드시 남성 성직자만 설교해야 한다는 아룬델 칙령에 아랑곳없이 끝없이 자신의 종교 체험에 입각한 가르침을 전하고 다니기도 했다. 더욱이 울음과 고성을 돌발적으로 터뜨렸던 탓에 그녀는 비정상 의혹을 받아 끝없이 마녀재판의 위협에 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켐프의 종교적 예민성은 심리적 차원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되묻게 만든다”(239쪽)고 말하는데, 자신을 심판하려는 주교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비난했던 그녀의 신비 체험, 그것에 바탕을 둔 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가 보인 놀라운 또 하나는 여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어려운 시절에 성지 순례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저리 켐프 서》의 존재만큼이나 켐프의 성지 순례가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재차 삼차 강조한다. 그녀가 일평생 시도한 성지 순례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당대의 통념에서 한참 벗어난 행위로, 여성에게 허락된 공간의 경계를 용감하게 넘어선 행위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그녀의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남과 여, 성과 속, 정통과 이단, 성직자와 평신도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237쪽). 바로 이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물론 경계에서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호함’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는 편이 간편하고 골치 아프지 않다. 그러나 나와 너, 여기와 저기 등의 차이를 첨예하게 구분해 이쪽과 저쪽의 갈등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온갖 경계를 넘나들었던 마저리 켐프와 같은 종교인의 행보야말로, 최근 사회 전 영역에서 계속 요구되는 ‘통합(합일)’의 길을 제시해주었던 사례가 아닐까.

 

유쾌하고 아름다운 합일의 경지

- 문익환&박용길 / - 프란체스코&클라라

 

성스러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심산유곡에서 정좌 자세로 명상하는 사람, 예배당 갇혀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루미, 카를 라너, 마저리가 보여주듯이 신은 초월적인 공간 저 너머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말하자면 신은 인간의 역사 속에 섭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 속에서 신의 존재를 찾고, 신의 섭리 실천한 한국의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문익환이다.

문익환을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은 북한에 다녀온 사회 운동가,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 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문익환은 사회운동가이기 전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던 목사인 동시에 성서학자였다. 또한 그가 보였던 정치적 행보들, 가령 북한을 방문해 김일석 주석과 만났던 것은 철저히 그의 신앙관에 기초한 것이었다. 1장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에서 김형수 시인은 “문익환은 한 생명체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문명이나 사상, 체제나 제도 따위가 아니라 하느님이 내려준 질서이자 생명 고유의 권한으로 만들어진다고 이해했다. 이 같은 경향은 문익환의 삶에서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 정신적 요체로서 그 실천 의지가 한국 현대사를 통해 눈부시게 발현되고 증명된 ‘살아 있는 종교성’의 예가 아닐까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삶은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유학을 갔다가 박용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호송되는 차량에서 시인 고은에서 “면회 온 박용길하고 입 맞췄다”라고 자랑을 하며 그에게도 빨리 결혼하라고 한다. 그에게 박용길과의 사랑은 자제해야 할 것도, 감추어야 할 것도 아닌 대단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이들의 사랑은 문익환이 보여주었던 종교적, 정치적 행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패결핵 환자였던 문익환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그와 6개월만 살다 죽어도 좋아요”라고 선언했던 박용길은 그 자신 역시 3.1독립선언문을 쓴 투사였다. 심지어 문익환이 방북을 포기하려 했을 때 “남자가 간다고 했으면 가는 거지, 이제 와서 중단이 뭐예요. 나 이제 당신 못 믿어”(45쪽)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문익환을 북한으로 보낸다. 문익환이야말로 삼팔선, 즉 눈에 보이는 ‘경계’를 뛰어넘은 인물이 된 셈인데,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서로의 종교철학과 신앙관이 완전히 일치했던 박용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수는 “(문익환은) 어떤 권력도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하느님의 것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삶의 단위를 인위적으로 분할하고 단절시키는 분단 통치도 체제가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행위에 속한다. 그래서 통일 문제를 논할 때마다 문익환이 남북 양 체제 앞에서 애오라지 민(民)의 입장으로 서 있고자 했던 것이다”(28쪽)라고 말한다. 박용길은 문익환 사후 그가 생전에 갔던 모든 곳에 갔고, 그가 살아 있다면 갔을 법한 곳에 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시인 고은은 “문익환이 박용길이고 박용길이 문익환이다”(46쪽)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완전히 합일된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신앙에 기초해 지극한 합일을 이룬 종교인을 꼽으라면 프란체스코와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자, 동물과 식물은 물론 물과 불 같은 자연계까지 사랑한 성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클라라와의 사랑 이야기도 이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종교인에게 흔히 기대하는 종교적 사랑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한 성인이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는 4장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에서 프란체스코와 클라라의 초기 삶, 그들의 종교 사상과 행보, 둘 사이의 사랑의 성격 등을 조명한다. 그에 따르면 프란체스코가 분명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평생 단벌로 살아낸 가난한 수도사가 된 것은 맞지만 음울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한다(135쪽). 보통 사람이 얻는 데서 즐거움을 얻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가 현대인에게 아직도 큰 울림을 주는 성자로 추앙받는 것은 계급과 명예가 중시되던 중세에 사람들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치거나 가치가 있다 없다로 차별하지 않고 보통 사람을 모두 왕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는 불과 물, 죽음까지 형제와 자매라고 칭하는 그에 대해 “그는 자연계와의 완전한 동질성을 느꼈던 셈이다. 화엄 불교에서 말하는 사사무애事事無礙(세상의 모든 일 사이에 걸림이 없다)라고 할까”라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도 격정의 순간은 있었다. 바로 재능과 외모를 겸비한 클라라와의 만남이었다. 물론 이들은 출가한 뒤 서로 거의 만나는 일 없이 일평생 철저한 금욕을 실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말년에 이르러서는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이런 완고함이 수그러들어 성 다미아노 수녀원으로 들어가 클라라의 간호를 받기도 한다. 또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는 클라라가 자기가 본 환상을 동료 수녀에게 들려주는데, 클라라가 프란체스코의 가슴을 애무하는 환상이었다. 자신의 가슴을 열어 잡고 마시라는 프란체스코의 말에 클라라의 그의 가슴을 빨고, 다 마시고 났을 때 여전히 젖꼭지가 자기 입술 사이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둘 사이에 흘렀을 에로티시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사회학자에 의하면 그들의 만남은 “사랑에 빠진 상태”의 특성을 고스란히 다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도 성인이기는 하지만 분명 다른 남자처럼 여인의 매력이나 성적 욕구를 경험했으리라는 것이다. 프란체스코가 성적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한겨울 눈 속에서 뒹굴기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164쪽). 이쯤 되니 역시 궁금하기는 하다. 그들의 사랑은 ‘신에게 승화된 혹은 전이된’ 사랑이기는 해도, 이런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아무래도 남과 여로서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 끌림의 요소가 필수라는 주장이 있듯이 아름다운 여인을 사모하는 에로스적 동경이 우정애로 승화되고, 그 우정애가 아버지와 자식의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의 경지로 승화돼 완전한 정신적 합일을 이루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4장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은 이런 추측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100명이 연애하면 100가지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종교인의 연애 역시 다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를 하나로 묶는 말이 있다면 성과 속,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랑일 것이다. 이쪽 혹은 저쪽의 영역에 완전히 고착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 때의 역동성, 합일성이 종교인의 연애를 하나로 묶는 동시에 보통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는 힘일 것이다.

1장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

문익환 & 박용길 _ 김형수

2장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루미 & 샘즈 _ 현경

3 장 익명의 사랑

카를 라너 & 루이제 린저 _ 이충범

4 장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 

프란체스코 & 클라라 _ 오강남

5 사랑과 이별은 하나이며 나와 당신 또한 하나라

일엽 & 백성욱 _ 유진월

6장 성속 합일의 에로스

마저리 & 그리스도 _ 성해영

유진월

한서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이며 극작가이다. 경희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즘 희곡사인 《한국희곡과 여성주의비평》에서 《김일엽의 신여자 연구》 《영화, 섹슈얼리티로 말하다》에 이르기까지 여성, 연극, 영화 관련 연구서를 다수 출간했다. 또한 <불꽃의여자 나혜석>, <헬로우 마미>, <그들만의 전쟁> 등 대부분의 희곡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적 시선을 바탕으로 여성과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다.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올해의 한국희곡베스트5 작품상, 국립 극장장막극 당선, 동랑희곡상 등 연극 관련 상을 수상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현재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학교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도덕경》 《장자》 《예수는 없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너머, 아하!》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아하!》 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역서가 있다.

현경

세계 진보 신학의 명문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 아시아계 여성 최초의 종신교수. 여성·환경·평화 운동가. 신을 설명하지 않고 표현해내는 신학적 예술가. ‘다름’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문화 통역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여성신학 실험학교인 보스턴 여성신학센터를 졸업,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경은 1991년 WCC 제7차 세계대회 주제강연자로 나서 ‘초혼제’를 지내며 성령에 대한 새로운 신학 이해를 펼쳐 보였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강연’으로 거론되는 이 강연은 《뉴욕 타임스》 《타임》 《슈피겔》 등 수많은 매체에 소개되며 세계 신학계에 토론의 불길을 일으켰다. 1999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불교 명상을 배우며 히말라야의 수도원에서 살았고, 2006년부터 13개월간 이슬람 17개국에서 200여 명의 이슬람 여성과 평화 운동가들을 인터뷰했으며, 2008년 숭산 대선사 전통의 미국 관음선원에서 불교법사 자격을 받았다. 해마다 한국을 찾아 ‘살림이스트Salimist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자신을, 타인을, 지구를 살리는 살림이스트들을 키워내고 있다. 남북여성 평화통일 모임 ‘조각보’ 공동대표이며 ‘종교간 세계평화위원회’의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여신 3부작인 《미래에서 온 편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1, 2》와 8개 국어로 번역된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Struggle to Be the Sun Again》, 이슬람 순례기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등이 있다.

성해영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라이스 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며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종교체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A Happy Pull of Athene: An Experiential Reading of the Plotinian Henosis in the Enneads》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 《생각해 봤어? 2》(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탄트라의 종교 사상 비교〉 〈수운(水雲) 종교체험의 비교종교학적고찰〉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간화선(看話禪): 종교체험과 수행 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이충범

연세대학교(문학사)와 감리교 신학대학교(신학사)를 거처 드류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석사(M.Div)를, 대학원에서 중세신비주의 연구로 철학박사(Ph. D)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신학부의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세미시문화사, 문화신학, 일상신비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노래로 듣는 설교》 《중세 신비주의와 여성》 등이 있다.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1988년 문예지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정열적인 작품 활동, 그리고 치열한 논쟁을 통한 새로운 담론 생산은 그를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으로 불리게 했다. 주요 저서로 시집 《빗방울에 대한 추억》,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조드-가난한 성자들(전2권)》,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흩어진 중심-한국문학에서 주목할 장면들》, 평전 《문익환 평전》,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 시인 고은과의 대화》, 창작자를 위한 이론집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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